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0.26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발생 전 상황[*참고 [[https://m.yna.co.kr/view/AKR20191016029700501?section=search|[10·26 40주년]① 궁정동의 총소리…엇갈리는 평가]].[[https://m.yna.co.kr/view/AKR20191018021000501?section=search|[10·26 40주년]②국내외 문건·증언으로 재구성한 10·26(1)]]. [[https://news.v.daum.net/v/20191025060201984|[10·26 40주년]③국내외 문건·증언으로 재구성한 10·26(2)]]. [[https://news.joins.com/article/1525095|김재규등 피고인 8명에 대한 대통령시해사건 공소장 전문]]. [[https://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nNewsNumb=20161222249&nidx=22250|김계원(金桂元) 전 청와대 비서실장 생전 인터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정희 삽교천.jpg|width=100%]]}}} || || {{{#000 '''1979년 10월 26일 오전[br][[삽교천|{{{#000 삽교천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000 박정희}}}]] 대통령'''}}}[* 본 행사는 박정희가 생애 마지막으로 참석한 공식 행사가 됐다. 더불어 해당 사진이 박정희의 생애 마지막 사진이기도 하다.] || 1979년 10월 26일 아침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 박정희 대통령은 [[충청남도]] [[당진시|당진군]]에서 열린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KBS 한민족방송|KBS 당진송신소]]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이 중 당진송신소는 [[대북방송]] 송신 기능 때문에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던 보안 시설[* 이 때문에 당진송신소 행사는 민간에 공개되지 않고 치러져서 일반인들에게는 당진송신소가 아닌 삽교천 완공식이 박정희 생전의 마지막 공식 행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진송신소 행사 장면이 민간에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1999년 KBS 박정희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이후 2005년판 [[KBS 영상실록]] 1979년 편에서 당진송신소 행사 장면이 공개되었다.(1995년판 영상실록에서는 미공개)]이었기 때문에 중앙정보부의 부장인 김재규 자신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두 시설의 준공식에 참석하려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차지철은 김재규에게 '''"[[부마민주항쟁|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정보부장까지 서울을 비우면 어쩌란 말입니까? 김 부장은 참석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세요."'''라고 면박을 주며 전화를 끊었다. 이전부터 차지철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김재규는 [[안하무인|차지철의 이러한 면박과 오만한 태도]]에 분명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당시 박정희는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김영삼의 국회 제명]]과 [[부마민주항쟁|부마항쟁]] 등 일련의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이날 아침에는 평소 즐기던 농촌 시찰을 앞둬서인지 옷을 갈아 입으면서 어깨를 들썩이고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고 한다. 정장을 챙겨 입은 박정희는 청와대 본관 2층 침실 옆의 식당에서 두 딸 [[박근혜]], [[박근령]]과 아침 식사를 한 뒤[* 막내아들 [[박지만]]은 당시 [[육군사관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청와대에 없었다.] 1층 집무실로 내려가면서 '''"나 오늘 삽교천에...(갔다 올 거야)"'''라는 말을 남겼고 박근혜와 박근령은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라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것이 '''아버지와 두 딸의 생전 마지막 대화'''였다. 오전 8시, [[대통령비서실장]] [[김계원]]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후 [[민정수석비서관]] [[박승규(1932)|박승규]]를 따로 불러 "내일 각하께 부마 사건 보고 시에 김재규 중정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간의 불화에 대해 보고하고, 차 실장의 월권 행위도 말씀드리시오."라고 지시했다. 사실 김계원은 며칠 전 박정희에게 차지철의 월권이 심하다고 건의했지만 박정희는 "차 실장이 국회의원도 해봐서 정치를 잘 안다."고 말하며 김계원의 말을 잘라 버렸다. 그래서 김계원은 자신이 같은 내용을 다시 박정희에게 보고하기 뭐해서 박승규가 대신 한 번 더 말하도록 부탁한 것이다. 이 무렵 김계원은 두 사람의 불협화음을 해결하려고 김재규를 경호실장, 차지철을 중정부장으로 보직을 맞바꾸자는 안을 박정희에게 건의하려고 했다. 삽교천으로 출발하기 직전 김계원은 청와대 복도에서 차지철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차지철은 마치 들으라는 듯 "비서실장도 자리를 비우는데 [[김재규|중정부장]]이란 자도 [[삽교천|행사]]에 참석하겠다니... 이런 상황일수록 자리를 지켜야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김계원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전 10시 30분 경 김계원, 차지철과 함께 헬리콥터에 탑승하여 청와대를 출발한 박정희는 이동 도중 헬기에서 공업단지 건설과 농촌 개량 상황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고, 김계원에게 "(비서)실장 모친께서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내일(10월 27일)은 찾지 않을 테니 어머니를 뵙고 오라"고 이야기했다.[* 참고로 차지철은 자신을 키운 홀어머니에게는 둘도 없는 효자였으며 평소에 아무리 갈구고 질책하던 이들에게도 가족과 관련된 일, 특히 어머니에 관한 일이라면 항상 배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박정희 또한 주변 인물들이 부모님 관련으로 사정이 생기면 공무는 제쳐두어도 좋으니 갔다 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오전 11시 경 박정희는 삽교천 행사에 도착하여 약 8분 분량의 방조제 완공에 대한 경축사를 낭독했는데 이때 주변에 있던 일부 장관과 경호원들은 '''"오늘따라 각하 목소리에 힘이 없다"'''며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경축사를 마친 후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니 이 동네 최고령 어르신을 모시고 오라."고 지시했고 경호원의 손에 이끌려 온 83세의 이길순 옹[* 상단 사진 맨 좌측의 새마을 모자를 쓴 흰 수염 노인이다.]과 같이 테이프를 커팅하고 방조제 갑문 개방 버튼을 누른 후 "올해 농사는 잘 지으셨는가. 건강하시라."라며 이 노인을 격려했다. 그 다음 KBS 당진송신소로 이동하여 완공식 치사를 한 박정희는 송신소 응접실 의자에 털썩 앉더니 [[김성진(1931년 10월)|김성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문화공보부 장관]]에게 "김 장관, 나 물 한 잔만 줘" 라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고 김성진이 가져온 물컵을 단숨에 들이킨 후 축 늘어졌다. 이를 본 김성진은 겨우 몇 시간 남짓한 행사에 박정희가 이렇게 지치는 걸 보고 안쓰러워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도고온천|도고호텔]]에서 부처 장관, 지역 유지들과 점심을 같이 한 후 오후 2시 반 경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이날 헬기는 청와대로 바로 가지 않고 박정희의 지시로 충청남도 [[아산군]]의 [[현충사]]를 거쳐 서울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한 후 착륙했다. 그런데 이날 마치 박정희의 운명을 암시라도 하듯 삽교천과 당진송신소 행사 도중 몇 가지 크고 작은 불길한 조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삽교천 완공 기념 담수비를 제막할 때는 강한 바람에 천이 비석을 휘감아 버려 박정희가 아무리 줄을 당겨도 벗겨지지 않는 통에 결국 경호원들이 올라가 직접 천을 벗겨내야 했고 당진송신소에서 점심 장소인 도고호텔로 이동할 때는 박정희 일행을 태운 헬리콥터 1호기는 이상 없이 이륙했지만 2호기가 기관 고장을 일으켜 긴급 정비로 30분 정도 주저앉아야 했다. 게다가 1호기가 도고호텔에 착륙할 때 호텔 사육장에서 키우던 [[사슴]]들이 헬기의 소음과 강풍에 놀라 이리저리 날뛰다가 새끼를 밴 암사슴 한 마리가 축사 기둥을 들이받고 머리가 깨져 즉사하는 괴변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고들은 박정희에게 일일이 보고되지 않았다. 행사를 마친 후 청와대로 돌아와 경호실장실에서 경호실 차장 [[이재전]] 육군 중장과 삽교천 준공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차지철은 오후 4시 경 박정희로부터 이날 저녁 안가 행사를 준비하라는 인터폰을 받았다. 무슨 일이냐는 이재전의 말에 차지철은 "별 일 아닙니다. 오늘 특별한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이 장군은 먼저 퇴근하시오."라고 답했는데, 이때 차지철은 "오늘은 좀 쉬시지..."라면서 약간 짜증스러운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궁정동]] [[안전가옥]]은 담장이 드높은 청와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장 밖에 별도로 위치한 집이었으며 주로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장의 식사 모임이나 작은 연회가 열렸을 때 사용되었다. 안가는 박정희와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 중앙정보부의 관계자 일부만 아는 극비 보안 시설이라 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나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도 암살 사건 수사를 개시하고서야 그 존재를 알았다고 한다. 특히 전두환은 10.26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976년에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도 안전가옥의 존재를 몰랐다니 보안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별히 보안이 철저했다기보다는 당연한 얘기지만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는 안가를 다른 기관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